[미디어유스 이수언]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가 최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거취문제(출당공론화)를 겨냥한 발언으로 자유민주 시민진영에서는 이를 둘러싼 파장이 일었다.
거취문제의 핵심은 박 전 대통령의 출당과 관련한 문제다. 발언 초기 안팎 여론을 살펴보면 출당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이 많았다.
우파 원로들은 물론이고 지난해부터 탄핵반대를 외쳐온 수백만의 태극기 집회 참석자들은 출당은 인정할 수 없고, 홍준표 대표에 대한 지지철회로 맞서고 있다.
반면, 그래도 끝까지 홍준표 대표를 믿고 따라가야 한다는 의견도 팽팽하다.
출당을 반대하는 목소리는 간략히, 출당이 탄핵의 완성이고, 탄핵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는 입장이다.
출당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정치적 책임을 져야한다는 입장으로, 탄핵이라는 굴레의 과거를 벗어나 새롭게 나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도 기본적인 입장은 출당반대다. 그러나 맹목적 출당반대는 하지 않는다. 손자병법에는 삼십육계 주위상계(走爲上計)가 있다. 피하는 것도 하나의 계책이란 뜻이다. 그러나 ‘피하되, 아무 대책 없이 피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 가장 중요하다.
또 출당이 합리적일 수밖에 없는 해석이 존재할 수도 있기에, 이 점을 염두에 두고 무조건 출당반대를 하지 않은 것이다.
자, 이제 냉철한 이성으로 바라보자.
박 전 대통령이 출당 안 되면, 현 시점에서 박 전 대통령에게 달라질 것이 무엇이 있나. 복권이 되나, 재판이 멈추나, 사면이 되나, 달라질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다.
여기에 우리가 얻는 것은 또 무엇인가. 각자 고민해 보자. 그래도 엄밀히 한 가지 말하자면, 박 전 대통령을 출당으로부터 지켜냈다는 그 사실이 전부다.
수많은 의미를 부여해도 결국, 출당을 막았다는 사실 뿐, 현실에 처한 다른 수많은 상황은 달라지지 않는다.
예로, 수백만의 태극기 시민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지천을 울렸던 그 말 “탄핵무효”, 수백만이 모여도 권력욕에 눈 먼 인간들에겐 쇠귀에 경 읽기였다.
게다가 북한에 대해 비핵화라고 아무리 부르짖어도 들으려 하지 않는 것과 같은, 그런 정권이 들어섰다.
홍준표 대표의 출당을 겨냥한 발언은 정말 3자의 객관적 입장이라고 생각된다.
냉철하게 자신들 가슴 속 깊은 내면을 한 번 들여다보자. 박 전 대통령의 출당반대가 동정심에 따른 것인지 아닌지, 물론 동정심이 아닌 분들도 많다.
동정심에 따른 것이 아니라면, 이 난국을 헤져나갈 해법은 무엇인가. 출당을 반대하는 원로들도 일리 있는 이유를 대고 출당에 반대할 뿐, 해법을 제시한 분이 없다.
물론 우파 결집을 위해서라는 좋은 이유도 있다. 아주 굉장히 타당한 이유다.
그러나 하나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간 박 전 대통령 주위에는 무덤 끝까지 따라갈 기세인양 자처한 정치인들이 있었다. 바로 친박이다. 엄밀히 말하면, 이들은 친박이 아니고 친박팔이 기회주의 정치꾼이다.
만약 박 전 대통령을 우리 손에서 잠시 또는 원로로서 떠나보내지 않는다면, 아마 이들 친박팔이 정치꾼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까.
들리는 말로, 일부 의원들은 홍준표 대표를 자신들의 영향 아래에 두려고 입김을 뿌리고 있다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고로 박 전 대통령을 놓아주지 않으면, 거머리 같은 친박팔이 기회주의 정치꾼들도 덩달아 살아난다는 사실도 알아야 한다. 이뿐인가 온갖 기회주의 인간들이 그녀에게 붙어 기생할 것이다.
전국 토크쇼를 진행 중인 홍준표 대표는 지난 27일 부산 토크쇼에서 그간의 출당문제에 쐐기를 박는 전격 발언을 했다. 홍 대표는 “(정치인이 아닌) 자연인 박근혜로 돌려보내야 재판에 유리하다”고 전격적으로 입장을 밝혔다.
그의 앞 뒤 말을 들어보면, 출당 이유는 굉장히 합리적이다.
그래도 필자는 이런 명쾌하고 합리적 이유가 있더라도 그 사람의 본질의 의미를 보고 판단하기에, 숨어있는 그의 진정성을 보려고 했다.
홍 대표도 인간으로써, 탄핵사태에 대한 안타까움을 안고 있다는 것은 최소 느꼈다.
그간 홍 대표는 일부 사람에게는 공감되지 않는 말이나, 정치적으로만 판단된 말을 한 경우도 많았다. 이럴 땐 역시 정치인의 한계를 못 벗어나는 구나란 생각을 했다.
사실 필자는 정치인 홍준표 보다, 정치인이라는 수식어를 뛰어 넘는 더 큰 위인이 되길 바랬다. 물론 정치인이 판단을 정치적으로만 하더라도 나쁜 것은 아니지만, 그 만큼 더 크길 기대했다.
그런 의미에서 안고 정면돌파를 바랬다. 이랬을 경우 상처뿐인 영광밖에 없고, 싹 튈 기약 없는 우파, 친박팔이 정치꾼들의 기생·훼방 등 수많은 난제도 고스란히 안게 되는, 현실에 처한 수많은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면서도 정면돌파를 바란 이유는, 진실추구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의 난국을 헤쳐 나가기 위한 시점의 시대를 보기 보단, 당장은 우파가 무너져도 5천년 역사란 큰 틀 안에서 보기를 바랬다.
우파의 싹이 튀는 것은 기약 없을 수 있지만, 자유민주주의가 살아 있는 한, 우리 세대가 아닌 다음, 아니 다다음 세대에서는 언젠가 싹은 다시 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출당이 합리적일 수밖에 없는 시점의 시대를 무작정 거부하고 싶지는 않다. 기약 없는 세월보단 내 눈 살아생전 권선징악(勸善懲惡)이 이뤄지고, 그녀가 편안히 사는 것을 꼭 보고 싶기 때문이다.
또 우리가 시대의 목격자로써 매우 침울한 것에 비해, 후세는 시대의 목격자가 아니기에 그런 마음이 전혀 없다는 냉정한 사실을 생각하면 더욱더 시점의 시대를 거부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고로 홍준표 대표의 발언 맥락과 우파 시민단체의 리더들이 출당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이 나와 같은 마음이기를 바래본다.
자연인으로 돌아가더라도, 우리 마음속에 존재한다는 그 사실, 그 사실을 되뇌면, 세상이 그 사실을 부인하더라도 우리 마음속에는 진실이 자리 잡고 있기에 언제나 희망이 있다는 사실, 바로 그 사실도 바라봤으면 좋겠다. |